레이블이 쓸데없는 지식즐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쓸데없는 지식즐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0년 11월 28일 일요일

[쓸데없는 지식KIN] 대만?? 먹는거??? 대만에 대해 확실히 알자!

요새들어 대만의 라면땅 파동으로 인해 관심이 증대되었으나 배경지식 부족으로 산으로 질주하는 글들이 일부 보이더군요.







아는 것은 힘입니다.





1. 대만?? 타이완?? 타이페이?? 차이니즈 타이페이???





우리가 대만이라고 부르는 나라의 공식 명칭은 중화민국이며 신해혁명으로 인해 멸망한 청나라의 뒤를 이은 통일국가 중화민국 바로 그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름을 들어보았던 손문(쑨원), 장개석(장지에스)가 건국하고 기반을 다진 바로 그 나라입니다.



그럼 대만은??

그건 중화민국이 쫒겨가있는 섬 이름입니다. 그 동네 발음으로는 타이완이라고 하죠.



그럼 타이페이는??

그 곳은 중화민국의 현재 수도입니다. 대만섬 북쪽에 있지요.



차이니즈 타이페이는??

데탕트를 기점으로 세계각국들이 중화민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수교국을 갈아타면서 여전히 IOC나 FIFA의 회원국으로 남아있지만 더이상 중화민국이라는 국명을 쓸 수 없는 상태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압력을 가하고 로비를 하여 중화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한 지방이며 국가가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퍼뜨린 때문이지요.

(이 것을 하나의 중국 원칙이라고 합니다.)

이때문에 차선책으로 차이니즈 타이페이(해석하면 중국령 타이페이)라는 명칭을 국가명처럼 사용합니다.

대표적으로 올림픽, 월드컵 등 운동경기에서 차이니즈 타이페이라는 명칭과 국기인 청천홍백기대신 IOC기를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2. 한국이 일방적으로 대만의 뒤통수를 치고 단교했다??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1971년 중공과 미국간의 데탕트 이전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China라는 이름은 한치의 의심도 없이 작은 섬 몇 개만 남은 허울뿐인 중화민국의 것이었습니다. 데탕트이후..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1971년 10월 25일 중화민국은 UN 총회결의 2758호 (Restoration of the lawful right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n the United Nations)에 의해 UN이 인정하는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UN에서 추방당했습니다. 당시 중화민국의 지위인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도 새롭게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된 중화인민공화국에 넘어갔죠.



그때부터 중화민국의 악몽은 시작이었습니다.



미국, 일본 등의 주요 강대국들은 허울뿐인 중국인 중화민국보다는 대륙의 인구와 큰 시장을 지닌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택했고, 중화인민공화국의 가장 큰 수교 조건인 중화민국과의 단교를 실행했습니다.

미국은 심지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 몇 시간전에야 중화민국층에 단교를 통고하기까지 했지요.



한국은 중화민국의 사실상 마지막 주요 수교국이었습니다.

한국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 광복군에 대한 지원과 그 의리때문에 대한민국은 1992년까지 중화민국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미 국제적으로 중화민국은 더이상 하나의 국가가 아닌 중화인민공화국의 한 지방에 불과한 대접을 받고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은 1992년 8월 21일부로 공식적으로 단교하였습니다.

이미 그 해 초부터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간 수교 협상이 진행중이라는 사실은 중화민국 정부나 주한국중화민국 공관에 알려져왔습니다.

또한 공식단교 이전인 8월 18일에 1차적으로 단교에 대한 통보가 있었습니다.

아시아에 마지막 남은 수교국이 없어지는 상황이니 속이 상했을 겁니다.

하지만 단교 몇 시간전에야 통보한 미국이나 열흘 전에 통보한 일본에 비해서 우리가 뭘 잘못했을까요??

국제 외교라는 것은 내가 힘이 없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1992년까지 의리를 지켜줬으면 오래 지킨 것 아닐까요?



그러면 왜 중화민국에 비밀로 숨기면서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 협상을 하였느냐는 의문도 들만 합니다.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요 조건중 하나가 중화민국의 기존 대사관과 영사관을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에 넘긴다였습니다.

중화민국의 자산인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먼저 단교한 다른 나라들의 사례처럼 강제 퇴거를 거쳐서 넘기는 것 뿐이었습니다.

(참고로 1992년 당시 주한국중화민국 대사관은 서울 명동에 있었고, 그 곳은 공시지가만 해도 당시 돈으로 3천억원 규모였습니다.)



3. 그런데 왜 대만은 아직 망하지 않았지??



여기까지 읽어오셨다면 어째서 한 줌도 안되고 국제적으로 국가 취급도 받지 못하는 중화민국이 어째서 아직도 존속하는지 궁금증이 샘솟을 겁니다.



답은 바로 화교입니다.



전세계에 퍼져있고, 민족 기준으로는 유대인 다음으로 경제력와 정체성을 자랑하는 화교들의 대다수는 중화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중화민국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화교 자본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고, 이렇다보니 대만과 단교한 주요 국가들은 외교관계보다는 한 단계 아래인 대표부 설치를 통해 사실상의 외교관계를 유지중입니다.



거기에 더불어 중화민국은 그 국토나 국민은 한 줌에 불과하지만 그 경제력은 상당합니다.

2009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23백만명에 GDP는 총액이 약 735조달러, 1인당으로 따지면 3만달러 정도가 되는 부국입니다.

그러다보니 국제법상으로나 국제적인 인식은 국가가 아닌 중화인민공화국의 한 지방에 불과한데, 실상은 2002년에 타이완·펑후·진먼·마쭈 개별관세영역(Separate Customs Territory of Taiwan, Penghu, Kinmen and Matsu)라는 이름으로 WTO에 가입하기도 한 사실상의 독립국입니다.



물론 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제적인 비난을 감수하고 작정하면 충분히 중화민국은 그대로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 대가는 국제적인 비난 정도를 넘어서니까 놔두는 것이고요..

2010년 7월 30일 금요일

[쓸데없는 지식즐] 왜 애플 퀵타임과 아이튠즈는 윈도우에서는 개떡인가??

이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윈도우 3.1 시절까지 거슬러가야 합니다.
초창기 퀵타임 코드는 100% 애플산이 아니었고, 윈도우에서도 퍼포먼스가 나쁘지 않았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M$가 Video for Windows라는 베끼기 제품을 윈도우 3.1용으로 내놓고, 윈도우 95에 넣던 그 때 벌어졌습니다...
M$는 윈도우용 퀵타임의 소스코드중 애플이 외부 기업에서 도입한 수천줄을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확보해 Video for Windows를 내놓으면서 또한 퀵타임의 정상작동을 방해하도록 함정카드를 발동해둡니다.
당시만해도 윈도우용 퀵타임은 대부분 M$ API로 짠 윈도우용 프로그램이었던 관계로 바로 함정카드에 걸려들었지요.
애플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상을 알고는 1995년 M$와 소스코드를 개발한 외부회사, 그리고 또다른 몇몇 회사를 묶어서 소스코드 절도를 소송겁니다.

물론 그 이후로 윈도용 퀵타임은 이후로 맥OS용 퀵타임의 소스를 되도록 그대로 유지하고, 대신 맥OS의 주요 라이브러리를 포팅해서 얹는 위엄을 선보입니다.
당연히 시뮬레이터위에서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형국이니 당연히 욕만 얻어먹는 매머드가 되었지요...

아이튠즈도 그 길을 그대로 밟아서 윈도우용 버전이 나왔고, 특히나 맥OS X 출시 이후로 맥의 기본 시스템 라이브러리인 Core로 시작하는 각종 라이브러리들을 윈도우에서 돌아가게 포팅하는 위업이자 삽질을 달성하면서 맥을 겪어보지 못하고 윈도우에서 아이팟을 구매한 사용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도시전설이 싹텄습니다.

시스템 API에 사보타지 함정카드를 심었던 M$나 그렇다고 사실상 Mac on Windows를 구축한 애플이나 둘다 범상한 놈들은 아닌게 틀림없죠... ㅎㄷㄷ


PS. 앞에서 언급했던 1995년 소송은 1997년 맥월드에서 잡스의 컴백과 함께 발표했다가 잡스옹 돌팔매질 당할뻔 했던 바로 그 MS와의 협력 및 투자유치를 받는 조건으로 취하 애플이 취하했습니다.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쓸데없는 지식즐] 영국 육군은 왜 Royal Army가 아닌가?

이전에 클리앙에 올렸던 글인데 조금 수정해서 여기에 다시 올립니다. ㅋ


오늘날 연합왕국(United Kingdom : 영국)의 3군중 공군과 해군은 RAF(Royal AirForce), Royal Navy이지만 육군은 그냥 Army 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합왕국의 전신인 잉글랜드 왕국 시절까지 상고해봐야합니다.


옛날에는 잉글랜드 육군도 Royal Army 였습니다. 국왕 친위대와 친위 기사단의 확대였으니까요..
문제는 바로 찰스 1세와 찰스 2세 사이의 짧은 공화국 기간(Commonwealth of England)입니다.


찰스 1세는 루이 16세처럼 체포당해 목이 잘린 비운의 왕이고, 찰스 1세 처형은 훗날 호국경을 자칭한 의회파의 거두 올리버 크롬웰과 그가 이끄는 철기군 (잉글랜드 의회가 육성한 정예 육군으로 왕당파-찰스 1세-스코틀랜드 연합군을 대파하였으므로 오늘날 영국 육군의 뿌리..)이 저지른 사건이었죠.
문제는 크롬웰이 너무 철권-금욕주의 통치를 고집한 탓에 민심이반으로 크롬웰 사후 잉글랜드 의회에서 프랑스 망명중이던 찰스 1세의 아들을 국왕폐하로 추대해 모셔와 왕정복고를 실현했다는 것...
찰스 2세 입장에서는 그 철천지 원수 철기군이 싫었고, 결국 잉글랜드군중 유일하게 Royal 딱지를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 후로 왕정이 건재한 까닭에 여전히 대영제국 육군은 모시던 왕을 폐하고 죽인 죄인취급을 받고 있습니다.